지혜세상/영화산책

"워낭소리"

청정주 2010. 4. 20. 09:14

워낭.

말이나 소의 턱 밑으로 늘여 단 방울.

훈련받은 배우가 아닌 촌로들의 투박한 삶속의 말이 적절한 때마다 자막을 통해 증폭된 감동으로 전달 되었다. 

영화는 최원균할아버지(80)와  이삼순할머니(77), 30년 전에 사들인 마흔 살짜리 소가 등장한다.

 

최원균할아버지 - 어려서 침을 잘못 맞은 한 쪽 다리의 후유증으로 지팡이에 의지하지 않고는 걸음걸이가

썩 쉽지않은 전형적인  농부.

 

이삼순할머니 - 16살에 시집와서 9남매를 키운 할아버지의 동반자.

 

소 - 10살의 나이에 할아버지와 인연을 맺은 이후 30년동안 우직하게 주인을 섬긴 할아버지의 동무.

 

의도된 시나리오가 없어 보이는 이 영화는  세 주인공 사이를 관통하는 믿음과 특별한 사랑에 대해 말하고 있고 거의 모든 대사는 자연의 소리,  끊임없는 할머니의 푸념과 그 푸념에 간간히 툭툭 던지는 할아버지의 대꾸로  채워져있다.

80년을 살아오며 얻은 지혜와 깊은 깨달음이 배어있는 그들의 일상적인 말들은 영화를 보는내내 가슴깊은 곳까지 흔들어댔다.

할아버지나 소나 걸음이 성치 않기는 마찬가지.

비틀거리는 소와 절뚝거리는 할아버지의 노동은 숭고하기만하다.

또, 정지화면에서는 도저히 읽을 수 없는 애잔함이 있다.

30년 동안 이렇게 한몸처럼 동행해오는 동안 소는 할아버지에게 할머니보다 더 소중한 존재가 되어버린 걸까?

소가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수레에 태우고 느린 비탈길을 오르는 것 조차 버거워할때 할머니를 향한 할아버지의 짧은 한 마디.

"내리라!"

할머니는 반사적으로 튀어내려 수레를 밀기 시작한다.

소 없이는 할아버지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투정과 푸념을 늘어 놓으며

우선순위에서 항상 소보다 밀리는 할머니가 질투의 감정도 숨기지 않는 장면에서는 마치 계산된 삼각구도를 보는 것 같다.

"우리도 기계로 농사를 지읍시다."

"제초제를 확 뿌리면 쉬울긴데 풀을 일일이 손으로 메고.."

"하이고 이놈의 팔자.. 니나 내나 주인 잘못만나서 고생이다."

제초제를 쓰자거나 농약을 뿌리면 수확량이 늘어날텐데 왜 사람 고생시키는지 모르겠다는 할머니에게 "농약을 뿌리면 소에게 어떻게 풀을 먹이느냐는" 할아버지의 반응은 소에 대한 애정을 넘어 생명의 의미까지 생각하게 하며 숙연하게 한다.

언제적 모델일까?

더 이상의 작동이 불가능해진 라디오를 만지작 거리는 할아버지를 바라보며 할머니가 말한다.

라디오도 고물, 사람도 고물, 소도 고물.

그러던 참에 소가 쓰러진다.

소가 괜찮겠느냐는, 얼마나 오래 살겠냐는 할아버지의 말에 애둘러서 "오래 삽니다, 1년은 살 수 있어요"라고 말하는 수의사의 진단을 믿고 싶지 않은 할아버지는 외마디 비명을 지른다.

 "안 그래!"

 

소를 은퇴시키기로 하고 젊은 암소를 사오지만 말귀 알아듣기를 하나, 일을 제대로 배우기를 하나,

게다가 굴러온이 돌 박힌 돌 빼려들듯 먹을 것 까지도 탐하니 영 마땅치 않다.

 

할아버지의 체력도 고갈상태이긴 마찬가지.

다리와 머리의 고통을 호소하는 할아버지가 딱한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일손을 놓게 하기위해 소를

없애기로 하고 9남매가 할아버지를 설득하게 한다.

이별의 때가 이름을 소도 알았나보다.

굵은 눈물을 흔린다.

콧날이 싸하며 짠해진다.

등 떠밀리듯 우시장에 나온 할아버지의 마음인들 가벼웠을까?

값을 놓아보라는 상인에게 할아버지는 단호하다.

 잘해야 60에서 100만원 받을 수 있는데 터무니 없다는 상인의 말에 할아버지는 더욱 단호하다.

 오백만원 아니면 안팔아.

"나한테는 이 소가 사람보다 낫다"는 할아버지의  30년 지기를 살집도 없고 고기도 질긴 비루먹은 짐승일 뿐

이라고 생각하는 상인의 시각에 모욕감을 느꼈으리라.

할아버지는 소를 팔지 않았다.

잘한 일이다.

영화 한 편의 완성때문이 아니다.

소가 죽으면 어떻게 할거냐는 동네사람들을 향해 "소 죽으면 내가 상주 할끼라"라고 말하며 아이같은 웃음을 짓던 할아버지는 처읍부터 소를 팔 생각이 없었을 터이다.

마침내 소가 쓰러진다.

소를 살펴본 수의사가 할아버지에게 말한다.

"할아버지, 마음의 준비를 하세요."

할아버지의 아픔을 헤아린, 가슴을 적셔주는 말이었다.

이 영화 속의 명대사 중 하나다.

 

할머니도 이즘에야 소에 대한 당신의진정한 속마음을 내 보인다.

"갈려거든 우리가 간 다음에 가지..."

장엄한 의식이다.

낫을 들고 소의곁으로 다가간 할아버지는 고삐를 풀어주고 워낭을 떼어낸다.

저승길 편하게 조용히 가라는 배려이자 이별의식이다.

이별의 아픔을 앞에 두고 달리 할 말이 무에 있을까.

좋은 데 가거라.

다음 생에는 멋진 생명으로 태어나달라는 축원이다.

이런 가슴 저미는 일이 있나.

슬프지만 아름다운 이별이다.

 영화보는 내내 자극 받은 눈물샘이 앤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비로소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많지 않은 관객이었지만 싸구려 오락영화가 끝났을 때와는 달리 불이 밝혀지기 전까지 누구도  자리에서 일어서지 않았다.

그들도 눈시울을 훔쳤던 게 분명하다.

워낭소리.

수레소리조차 들리지 않게 조심조심 걷는 소의 존재를 알게 해주던 워낭소리는 20 여년동안  귀에 익혀두었던 , 소의 존재와 행동거지를 알리기 위한 기능 이상의 아름다운 음악 소리였다.

 여름의 개울가 그늘 밑에 메어둔 소는 자기 몸에 덤벼드는 쇠파리가 몹시 귀찮을 때 한 번씩 꼬리를 내저었고

그럴 때마다 워낭은 부드럽고 잔잔하게 고막을 적셔 주었다.

아직도 귓 가에 은은히 퍼지는 워낭소리는 환청이 아니다.

그리움의 망향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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