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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찌도 더불어 함께 사는 사회

청정주 2012. 10. 3.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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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의 일이다. 
나는 미국 와싱턴 D.C에 살고 있는 큰 딸의 집을 찾았다. 
공항에 내려 보니 딸만이 마중나와 있었다. 
사위는 병원시간이기 때문에 직장을 떠날수 없었고, 
외손자 되는 [진]이는 학교시간일 것 같았다. 
차를 타고 집으로 들어오면서 큰 딸은 나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진]이 놈이 머리가 나쁜 것이 아니고 공부도 제법 잘하는 편인데 
운동신경이 너무 둔하고 적극성이 없어서 걱정입니다. 
운동은 언제나 꼴찌를 넘어서지 못합니다. 
자기도 어차피 운동은 못하는 것으로 단념해 버린 모양입니다."는 
것이었다. 
이야기를 듣는 나는 약간 서운했으나 인간은 누구나 개성을 갖고 있으며 
그 개성을 살려가면 되지 않겠느냐고 위로와 권고를 해 주었다. 
그러나, 어린 것이 운동때문에 열등감이나 일찍부터 좌절감을 갖는다면 
걱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는 동안에 집에까지 도달했다. 
온 가족이 저녁을 끝내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옆자리에 앉았던 [진]이가 학교 이야기를 하다가 
"할아버지, 내가 학교서 상장을 받은 것이 있는데 보여 줄까?"라는 
것이었다. 
"무슨 상장인데...."라고 물었더니, 
"학교에서 운동회 때 받은 상장이야" 라는 것이다. 
자기 엄마얘기를 들으면 운동은 아무것도 못한다는 것이었는데 싶어 
"어디 보자"하고 가져오도록 했다. 
내가 받아본 상장은 생각밖의 내용이었다. 
말하자면 "제일 열심히 뛰었기 때문에 이 상장을 주었다."는 것이다. 
나는 상장을 읽으면서 웃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그렇다. 꼴찌를 했으니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뛰었음에는 틀림이 없다. 
나는 진에게 "그래, 제일 열심히 뛰었으니까 상장을 받아야지." 하고 
칭찬해 주었다. 
손자녀석도 만족스러이 웃고 있엇다. 
나도 흐뭇한 기분에 잠겼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수 없었다. 
만일 [진]이가 한국서 국민학교를 다녔다면 체육대회나 운동회 때 
한 번도 상장을 받아 보지는 못했을 것이다. 
상장을 받지 못한 것 보다도 [진]이는 열등감과 창피스러움을 
벗어날 길이 없었을 것이다. 
어떤 선생은 책망을 했을지 모르며 다른 학생들은 꼴찌를 했다고 
놀려주기도 했을 것이다. 
앞으로는 운동을 더 못하게 되었을지도 모든다. 
뿐만 아니라, 그 열등의식과 좌절감이 오랫동안 [진]의 성격과 인생에 
흠집을 남길 수도 있었을 것이다. 
체력이 약하게 자라게 한 부모에게 불만도 가질수 있으며 
어렸을 적부터 자기 능력의 한계를 스스로 느끼는 불평을 
남길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한다면 그 한 장의 상장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 
아마 상장을 받은 것은 운동회에 참가했던 모든 학생일 것이다. 
꼴찌인 [진]이가 받았으니 다른 어린이들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또 만일 모두가 상장을 받았는데 우리 진이만 못받았다면 
진이가 받는 정신적 타격이 얼마나 크겠는가. 
생각해 보면 진의 학교 선생님과 그 사회는 
고마운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 
꼴찌에게 칭찬을 할 수 있는 사회라면 그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그러니까 모든 꼴찌가 즐겁게 귀히 여김을 받으면서 
살수 있는 사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교육은 어떤가. 
무슨 짓을 해서라도 첫째가 되어야 칭찬을 받고
자랑스러움을 느끼는 사회로 굳어져 가고 있다. 
물론, 선의의 경쟁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 선의의 경쟁이 악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기를 원한다. 
어떻게 해서든지 첫째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칫하면 같은 생각이 선생님들에게도 번질 수 있다. 
그래서 선생들은 별로 책임감 없이 
"우리 반에서 이 학생이 제일입니다." 라는 말을 하게된다. 
그 뜻이 무었인가. 
지난 번 시험에 이 학생이 제일 많은 점수를 받았다는 지적이다. 
시험성적이 좋았다고 해서 그 학생이 제일이 될 수는 없다. 
운동을 잘하는 학생도 있고, 인간관계가 앞서가는 학생도 있다. 
장차 위대한 실업가가 될 어린이가 있고 
존경받는 예술가가 될 학생도 잇다. 
성적이 그 때 앞섰다고 해서 인격적으로 보다 
훌륭한 인물이 된다는 법도 없다. 
개성을 소중히 여기는 교육자가 있다면 모든 학생이 
다 제일이라는 평을 해야 할 것이다. 
모든 어린이가 자기 소질과 취미에 있어서는 
제일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을 똑 같을 수 없고 또 같아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가 있다. 한 두 학생을 추켜 주면 
그들을 제일로 삼기 위해 수많은 학생들을 열등과 좌절감에 
몰아넣는 일은 얼마나 비교육적인가. 
생각해 보면 우리들의 잘못된 가치관이 많은 어린 생명들에게 
고통과 불행의 원인을 만들어 주고 있다. 
교육이란 어린이들의 능력을 개발해 주며 선한 의지와 
신념을 뒷받침해 주는 일이다. 
그 선의의 뒷받침은 모든 학생들에게 필요하며 또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열등과 좌절을 느끼는 학생들일수록 더 많은 
긍정적인 칭찬과 성장을 위한 후원이 있어야만 될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앞서가는 학생들보다는 처지는 학생들이 
더 많은 칭찬과 격려를 받아야 하는 것이 교육적 책임일지 모른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우리 모두는 깊은 반성에 잠겨야 하겠다. 
"과연 나는 꼴찌인 어린이에게 상장을 줄 수 있을 정도로 
자신있는 교육자가 되고 있는가?" 하고
이 글은 김형석의 에세이집인 
{희망과 사랑이 있는 공간}이란 책에서 나온 내용으로 
우리나라 교육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 많은 공감을 가져오고
특히, 꼴찌에게도 상장을 주어 
모든 학생들로 하여금 열등감과 좌절감을 겪지 않도록 하는
교육풍토가 잔잔한 감동이 되어 소개를 했습니다.
우리 나라 교육이 성적중심과 사교육중심으로 흐르다 보니
상대적으로 인성교육과 특기적성교육이 소홀히 취급되어
오늘날 사회적으로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어 
뜻있는 이로 하여금 많은 우려를 하게 하고 있습니다.
학교교육이 일등만을 추구하고 서열을 매기다보니
그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졸업하고 나가는 사회조차도
일등만이 살 수 있는 삭막한 현실이 되어 
오늘날, 우리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취업경쟁에 내몰려 하루하루를 
지옥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우리 소중한 님들!
일등만이 살아남는 사회가 아닌 꼴찌도 함께 더불어 살아남고 
강자만이 살아남는 사회가 아닌 
사회적 약자도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공생공영의 사회,
꼴찌에게도 칭찬을 해주고 꼴찌도 칭찬 받는 그런 사회가 되면
얼마나 좋은 세상이며,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일까요.  
그런 세상을 향해서 오늘도 한번 가 봅시다.
감사합니다.
정천경교무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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