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세상 /밝고

종교의 선택-이응원 교무

청정주 2012. 5. 22. 13:32

 

 

안녕하십니까?

신앙에는 자력신앙(自力信仰)이 있고 타력신앙(他力信仰)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신앙이 한 쪽만 고집하면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치우침은 도라 하지 않는 것이죠. 그런데 오래 된 종교를 보면 한 쪽만 강조하여 서로 용납하지 못하고 배타적이기 쉽습니다. 그럼 이 양 쪽을 아우르는 완전한 진리를 구현하는 종교는 없는 것일까요?

 

우선 무신론(無神論)과 유신론(有神論)부터 알아보는 것에서부터 출발하죠. 대체적으로 불교는 무신론의 종교요, 기독교는 유신론의 종교라고 말합니다. 아마 이것이 불교와 기독교의 근본적 차이점일 것입니다. 이 차이점의 당연한 결론으로서 불교는 자력주의(自力主義)의 종교요, 기독교는 타력주의(他力主義)의 종교라는 명제가 생기게 됩니다.

 

먼저 불교부터 생각해 보기로 합니다. 불교는 신(神)의 존재를 믿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무신론 위에 서는 종교입니다. 불교는 불타(佛陀), 즉 석가모니의 가르침인 동시에 사람은 누구나 다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기독교적으로 이야기한다면 사람은 누구나 다 신이 될 수 있다는 것이죠. 이것은 기독교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일 것입니다.

 

부처는 신도 아니요, 또 신에게 권능을 부여받은 사람도 아닙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한 인간이었습니다. 그는 6년의 설산수도(雪山修道) 끝에 우주의 대 진리를 깊이 깨달은 자가 된 것입니다. 부처는 완전한 각자(覺者)입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진지한 수도를 하면 부처, 즉 완전한 각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신의 은총이나 성령(聖靈)의 힘이 필요치 않습니다. 부처는 하나의 이상적 인간상(理想的 人間像)인 것입니다. 불타는 스스로 진리를 깨닫고 완전한 지혜와 자비(慈悲)의 인격을 이루었습니다.

 

불타가 깨달은 진리의 내용이 불교입니다. 그 진리의 내용은 이성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다 이해할 수 있고 납득할 수 있습니다. '불법(佛法)에 불가사의(不可思議)가 없다'는 말은 그런 뜻입니다. 불교에 의하면 우리가 믿고 의지할 것은 자기(自己)와 진리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신을 믿을 필요도 없고 신의 힘을 의지할 필요도 없습니다. 나는 자력(自力)으로 나를 구원할 수 있고, 나는 불성(佛性)을 지니기 때문에 해탈(解脫)과 열반(涅槃)의 자유자재(自由自在) 경지(境地)에 스스로 도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의 마음이 곧 부처인 것입니다. 심즉불(心卽佛)입니다. 우리가 인생에서 믿고 의지할 것이 무엇이냐? 우리는 무엇을 인생의 등불로 삼고 살아갈 것이냐? 안심입명(安心立命)의 발판을 어디서 구할 것이냐? 여기에 대해서 석가는 자기 자신과 진리 이외에 믿고 의지할 것이 없다고 단언을 하였습니다. 즉 '내가 나의 등불이요(自燈明), 진리가 나의 등불(法燈明)인 것입니다. 내가 나의 의지처요(自歸依), 진리가 나의 의지처(法歸依)라는 이 유명한 명제는 불교가 얼마나 자력주의의 종교인가를 웅변으로 실증합니다.

 

이와는 반대로 기독교는 유신론과 타력주의 종교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럼 기독교의 신은 어떠한 신인가요? 파스칼은 그의 유명한 종교적 회심(回心)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신, 이삭의 신, 야곱의 신이지 철학자와 식자(識者)의 신이 아니다.” 자기가 믿는 성서의 신은 옛날 아브라함이 믿었고, 이삭이 믿었고, 또 야곱이 믿었던 신인 것입니다. 철학자나 과학자들이 머리속으로 생각하는 제일원인(第一原因)으로서의 신이나 형이상학적인 추상신(抽象神)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믿는 신은 신앙과 예배의 대상이 되는 유일한 인격신(人格神)이라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는 인간이 신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스스로의 수도(修道)에 의한 구원과 해탈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자력주의에 의한 자기 구원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내가 나를 구원할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구원은 오직 구세주(救世主)인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야만 가능한 것입니다.『빛은 내 속에 있다.』이것은 불교적인 인간관입니다.『빛은 나의 밖에 있고, 나의 위에 있다. 나는 그리스도의 빛에 의해서 비로소 빛에 참여할 수 있다.』이것이 기독교적 인간관인 것입니다.

 

이 양극단의 교리와 달리 양쪽 모두를 아우르는 종교가 있습니다. 바로 신생종교인 원불교(圓佛敎)입니다. 원불교의 신앙법은『자타력병진신앙(自他力竝進信仰)』입니다. 원불교는 뒤늦게 탄생된 만큼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는 완전한 교리를 지향합니다. 그러니까 원불교는 한 마디로 ‘원융회통(圓融會通)의 종교라 할 수 있습니다. 모든 교리가 중도(中道)에 바탕 합니다. 동정이 하나(動靜一如)이고, 영육을 쌍전(靈肉雙全)합니다. 이와 사를 병행(理事竝行)합니다. 곳곳이 불상(處處佛像)이요, 일일이 불공(事事佛供)입니다. 또한 불법이 곧 생활(佛法是生活)이요, 생활이 곧 불법(生活是佛法)인 종교가 원불교인 것입니다.

 

정산(鼎山) 송규(宋奎) 종사의《법어(法語) 경의편(經義編》40장에서 어떤 사람이 여쭈었습니다.

 

「귀교는 무신입니까, 유신입니까?」정산 종사 답하시기를,「우리는 어디에 따로 계시는 인격적 신은 인정하지 아니하나, 우주를 관통하여 두루 있는 신령한 진리는 이를 인정하나니, 우리의 마음을 단련하여 우주의 그 진리를 이용하며 그 위력을 얻자는 것이 우리의 주장이니라.」또 그 객이 여쭙기를,「귀교는 유심(有心) 입니까, 유물(有物) 입니까?」이에 대해 답하시기를「물심일여(物心一如)로 보나니, 우주 만유의 본체는 물과 심이 둘이 아닌 동일체이나 운용하는데 있어서는 심이 체(體)가 되고 물이 용(用)이 되나니라.」하셨습니다.

 

신앙을 하는 것도 다 인연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직 종교를 선택하지 않으신 분이 있으시면 여러 종교를 두루 비교분석 해본 연후에 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각자의 근기(根機)에 맞는 종교를 선택하시는 것이죠. 우리의 영생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