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는 불교와 어떻게 다른가?
중곡문화포럼 윤광일교수
대종사가 원불교를 개교하신 것은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의 심정과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원불교와 불교의 관계를 요약하여 말하면 바로 인도의 브라만교와 불교, 이스라엘의 유태교와 기독교, 천주교와 개신교와도 비슷한 관계다. 특히 불교와 원불교의 관계는 대종경 서품 제2장에 보면 ‘나의 연원을 부처님에게 정하노라’하심으로 불교와 원불교의 관계는 시작된 것이다. 또한 제1장에 보면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만유가 한 체성이며 만법이 한 근원이로다’라고 하셨는데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불교 뿐 아니라 기독교, 이슬람교도 다 한 체성이고, 한 근원이라고 할 수 있지만 생멸 없는 도와 인과 보응되는 이치에서 보면 불교와 원불교는 더욱 같은 뿌리에서 연유된 것이다.
이상과 같이 원불교는 불교의 뿌리에서 나왔지만 靑出於藍이라고 접근방법이나 활용에서 큰 차이점을 보인다. 한마디로, 원불교는 불교가 헌 옷을 벗고 새 옷으로 바꿔 입는 것과 같다. 불교가 옷을 바꿔 입어야 하는 증거는 불교의 신도들이 수행보다는 기복에 치우쳐 있으며, 불교의 남녀 차별 문제에서도 살펴 볼 수 있다.
조계종 출가승려 1만2천여 명 중 반수 가량이 비구니이건만, 조계종의 종헌과 종법은 종단기구의 주요 교역직 종무원 이상의 자격은 거의 다 비구에 한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면을 감안할 때, 우리 대종사의 선견지명은 1920년대(1916년 창시)에 벌써 최고지도자인 종법사를 남녀공동대표제로 하자고 할 정도였다. 그 결과 최근에는 원불교에 여성 교정원장 시대가 열렸다.
대종사의 말씀에 따르면 옛날에는 부처님의 형상을 모셔야 부처님을 뵙는 것 같고 믿음이 생겼으나 지금처럼 인지가 발달한 시대에는 진리의 상징인 일원상만으로도 믿음을 가질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래서 원불교에서는 부처님 그 자체보다는 부처님이 깨치신 眞理佛(진리불)인 法身佛(법신불)의 상징으로서 일원상을 신앙의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처럼 대종사께서 기존의 불교를 중흥하실 생각을 하지 않으시고 새로운 종교로서 원불교를 개교하신 동기는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와 비견되는 일이다.
불교에서는 부처님을 석가모니 부처님과 같이 나타난 부처님을 화신불, 진리 자체의 부처님을 법신불이라고 한다. 불교를 어렵다고 하는데 원래 법신불은 하나인데 그 화신불은 목적에 따라 석가모니불, 비로자나불, 노사나불, 아미타불, 약사유리광불,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 미륵보살, 지장보살, 일광보살, 월광보살로 나타날 수도 있다.
어느 부처님을 모셨느냐에 따라 법당의 이름도 대웅전, 대덕광전, 미륵전, 약사전 등으로 복잡한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만 보아도 아함경, 금강경, 반야경, 법화경, 화엄경, 열반경 등 이루 헤아릴 수 없고 재조고려대장경판(再雕高麗大藏經板)은 총 1,514종 6,802권의 경전에 이르는 방대한 양이다.
불교를 믿기도 전에 기가 질리게 하는 이런 상황에서 ‘간단한 것이 최고의 선이다’ 라고 하는 최근의 시대 흐름에서 원불교의 탄생은 필연적이다.
원불교에서는 진리불인 법신불을 상징하는 일원상을 신앙의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가장 복잡한 불교의 세계를 가장 단순한 종교의 세계로 인도하는 것이다. 화신불인 석가세존의 불상을 법당에 모시는 불교와 달리 법신불 일원상을 모시는 원불교가 더 근본 불교에 가깝다고 하는 것이 이런 이유에서 비롯된다.
일원상의 이치를 분명히 알면 팔만대장경이나 모든 성인이 소용없다 일원상을 신앙의 대상으로 한 것은 원불교가 처음이지만 진리의 상징으로서 원을 사용한 것은? 원불교가 처음은 아니다. 일원상은 삼라만상의 근원을 가리키는데 완전무결하고 위대한 작용을 하는 우주의 모습을 원으로 표현한 것이다. 우주만유의 본원 또는 원융무애한 법을 상징한다. 그래서 선가에서는 일원상을 1천7백 공안(화두)의 하나로 삼고 있다. 일원상의 이치를 분명히 알면 팔만대장경이나 모든 성인이 소용없다고 법정스님은 설명한 바 있다.
불교의 영원한 화두는 ‘이 뭣꼬’이다. 그러나 원불교의 영원한 화두는 ‘어찌할꼬?’이다.
생태적으로 원불교는 이와 사를 병진하는 가르침일 수밖에 없고 그래서 삼학의 순서도 정(정신수양), 혜( 사리연구), 그리고 마지막이 계(작업 취사)이다. 그래서 원불교의 신앙은 엄격한 의미에서 신행(신앙과 수행 병진의 의미)이다. 불교에서는 삼세인과를 중시한다.
삼세 인과경에 보면 ‘금생에 귀한 벼슬자리에 있는 사람은 무슨 까닭인가? 전생에 불상을 금으로 단장한 공덕이니라.’라고 되어 있다. 그래서 동남아에서 불교도들 중에는 생업을 포기하고 불상의 금단장에 일생을 허비하는 사람이 많다. 내생의 인과 보다는 현생의 인과에 중점을 두고자 하는 것이 바로 원불교가 불교와 진정으로 다른 점이다. 이러한 이유로 원불교는 靈과 동일한 양만큼 肉에 가치를 부여한다(靈肉雙全). 내생의 가치보다는 현생의 가치에 가중치를 부가하는 생산적인 종교라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원불교의 인과론은 인과보응이 음양상승과 같이 되기에 그 짓는 주체와 받는 주체가 동일하다. 이처럼 현실인과를 중시하는 인과론은 원불교 인과의 특성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이러한 현실인과를 중시하는 사상에 의하여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이 순간의 마음작용에 대한 신중함이 요구되며, 이것이 바로 무시선과 처처불상의 원리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예를 들어서 대종사가 부안 실상사에 계실 때에 한 노부부로부터 며느리가 자기들에게 불효를 하기 때문에 이를 부처님의 공덕으로 돌려 볼까해서 왔다는 말씀을 들으시고 왜 며느리라는 산부처에게 공덕을 드리지 않고 여기에 왔는가 하고 돌려보냈다고 한다. 원불교에서는 일원상에 드리는 진리불공도 중요시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일체 만물을 산부처로 여기는 당처불공을 더 중요시한다.
그것을 원불교에서는 處處佛像(처처불상), 事事佛功(사사불공)이라고 하는데 자기가 대하는 모든 사람을 부처로 생각하고 자기가 하는 일상의 모든 일을 불공으로 생각하라는 가르침을 준다. 또한 선을 인적이 드문 산골 법당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기차를 타고 갈 때도 변소의 변기 위에서도 하도록 권하고 있다.
원불교는 인과론과 음양상승의 도를 결합하여 일원의 진리를 펼친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원불교를 창립하신 뜻은 인과론과 음양 상승의 도를 결합하여 일원상의 도를 펼치심으로서 복을 짓는 주체와 받는 주체를 동일시하는 현세 인과의 가르침으로 ‘불법시 생활, 생활시 불법’을 실현하여 인류 생활을 더욱 향상시키고, 생활 속에서 불법의 진리를 찾아가자는 것이다. 생활과 불법을 분리해서 보지 않고 하나로 보아서 조화를 이루자는 것으로 소태산 대종사가 불교를 개혁하지 않고 원불교를 창립한 소이연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불교는 기독교에 비해 비생활적이라 현실 도피적이요 현실 생활에 소극적인 면이 많았다.
그래서 소태산 대종사는 생활 속의 불교를 표방했던 것이다. 생활불교란 사회생활과 불법수행의 불이를 의미한다. 의식주를 구하려는 사회생활과 수양력, 연구력, 취사력의 삼대력을 얻으려는 불법수행이 서로 조화를 이룬다는 것이다. 따라서 불법수행을 위해서 생활을 떠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생활속의 불법은 다시 말해서 생활속의 종교이다.
따라서 소태산 대종사는 불교의 개혁만이 아니라 종교의 개혁을 의도하였다. 결국 진리와 생활의 일치를 통한 종교의 생활화와 생활의 종교화로 활불을 만들고 불국세계를 건설하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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