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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해가 빠져나간다

청정주 2012. 12. 29. 13:38

또 한 해가 빠져나간다

 

 
인도에서 불교와 거의 같은 시기에 생긴 자이나교는
불살생계를 엄격하게 지키는 종교이다.
그들은 도덕적인 고행 생활을 강조한다.
그들에게는 1년에 한 번 '용서의 날'이 있다.
그날 자이나교도는 지난 한 해를 돌아보고 땅과 공기,
물과 불, 동물과 사람 등 모든 존재에게 해를 끼친 행동을
낱낱이 기억해 내면서 하루 동안 단식을 한다.
그들은 자신이 저지른 허물을 하나하나 상기하면서
용서를 구한다.
자신이 해를 끼쳤거나 생각과 말과 행위에 맞섰던 
사람들을 찾아가 용서를 구한다.
"나는 당신을 용서했습니다.
당신에 대한 원한을 갖고 내 마음 속의 미움이나 불만을
품고 있지도 않습니다.
이제부터 나는 당신의 친구입니다.
내게는 어떤 적도 없습니다.
똑같은 영혼을 지닌 당신도 나를 용서하기 바랍니다."
멀리 떨어져 찾아갈 수 없는 사람에게는 편지를 쓴다.
그런 다음에야 단식을 중단한다.
이와 비슷한 의식은 일찍이 불교 교단에서도 행해졌다.
자자(自恣)가 그것이다.
안거가 끝나는 날, 
대중이 선출한 자자를 받는 사람 앞에 나아가 
안거 중에 자신이 범한 잘못이 있었다면 
기탄없이 지적해 달라고 말한다.
이와 같이 세 번 거듭하여 만약 잘못이 있어 지적당하면
그 자리에서 참회한다.
이와 같은 '용서의 날'이나 '참회'는 묵은 허물을 훨훨 털어버리고
새롭게 시작하려는 의지에서 생긴 신앙적인 의식이다.
자신이 범한 업의 찌꺼기를 말끔히 청산하고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진 삶을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서다.
한 장밖에 남지 않은 달력을 바라보면서 
지나온 한 해를 되돌아본다.
내게서 또 한 해가 빠져나간다는 사실을 직시하면서,
잘 산 한 해였는지 잘못 산 한 해였는지를 헤아린다.
내가 누구에게 상처를 입혔거나 서운하게 했다면,
이 자리를 빌려 용서를 구하고 참회를 하고 싶다.
맞은편과 나 자신에게 다 같이 도움이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글은 법정스님의 {아름다운 마무리}란 책에서
[또 한 해가 빠져나간다]란 제목의 글 가운데 일부로,
내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글이기에 
한 해를 마무리 하면서 우리 소중한 님들과 공유하고자
소개를 했습니다.
저는 이 글을 보면서 자이나교도들이 
1년에 한번씩 실시하는 '용서의 날' 의식을 접하고,
나도 용서를 구할 사람이 정말로 많이 있구나 하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특히, 자신의 생각과 말과 행위에 맞섰다고
나의 앞길을 가로 막고 온갖 비방을 하며 훼방을 놓고
방해를 하는 사람에 대해서 어떻게 해서든 앞으로 
끝까지 복수를 해야겠다고 다짐을 하던 터에,
복수를 할 것이 아니라 용서를 구해야 한다는 글을 접하고,
생각만 해도 미운 당사자를 직접 찾아가거나 편지를 써서 
용서를 구할 수 있는 진정한 진정한 종교인으로서 용기가 없기에
그저 조용히 혼자서 반성하고 참회만 할 뿐입니다.  
원불교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께서는 {대종경} 인도품 4장에서
"저 사람이 나를 미워하거든 다만 생각없이 
같이 미워하지 말고 먼저 그 원인을 생각하여 보아서 
미움을 받을 만한 일이 나에게 있었거든 고치기에 힘쓸 것이요, 
그러한 일이 없거든 전세의 밀린 업으로 알고 
안심하고 받을 것이니라."고 하신 말씀과
"악한 사람을 불쌍히 여길지언정 미워하지 말라."는
송규 정산종사의 말씀을 오늘도 조용히 새기고 또 새겨봅니다. 
우리 소중한 님들!
정말로 용서를 구하고 참회를 한다는 것이
글과 같이 쉽지 않음을 절실히 느낍니다.
그래도 또 다시 마음을 한번 고쳐먹고 한 해를 마무리 하면서, 
끝까지 갈지는 자신이 없지만 해보려고 합니다.
그리하여 내가 범한 업의 찌꺼기를 말끔히 청산하고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진 새로운 새 해가 되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우리 소중한 님들도 혹여나 저와 같이 묵은 찌꺼기가 있다면
훌훌 털어버리고 새롭게 맞이하는 새 해가 되길 염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정천경교무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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