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도둑이 재판을 받기 위해 법정에 나섰다.
하필이면 두 도둑 중에 한 명은 재판장의 아들이었고,
다른 한 명은 재판장 아들의 친구였다.
그들은 서로 의기투합하여,
어느 부잣집 담을 넘어 들어갔던 것이다.
재판장의 아들은 닭장으로 가 닭을 훔치고,
그의 친구는 외양간의 소를 훔쳐 나오다가 붙잡혔다.
서로가 공범이었던 것이다.
재판장은 정에 이끌려
제 자식에게 가벼운 벌을 내렸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무척이나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 두 도둑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피고 김 좌근은 닭을 어떻게 가져왔는고?"
"그냥 손으로 목을 잡고..."
"닭이 울지는 않았는가?"
"닭의 부리를 꽉 움켜쥐고 있었기 때문에 울지는 않았습니다."
"피고 박만수는 소를 어떻게 끌고 왔는가?"
"소는 제 발로 걸어 나왔습니다."
재판장은 몇번 고개를 끄덕인 다음 마침내 선고를 내렸다.
"소를 훔친 피고 박만수에게는 징역 3년을 선고하고,
닭을 훔친 피고 김좌근에게는 절도죄와 더불어
동물 학대죄를 추가 적용해 징역 6년을 각각 선고한다."
재판장은 닭을 훔친 자기 아들에게 훨씬 더 무거운 형을 내렸다.
그런뒤 재판장은 나름대로의 논고를 펼쳤다.
"소를 훔친 자보다 닭을 훔친 자에게 더 무거운 형벌을 내린 까닭은,
소도둑보다 닭도둑이 더 큰 범죄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비록 고삣줄을 잡고 소를 끌고 가긴 했지만,
소는 제 발로 걸어갔고,
그에 비해 닭은 제 발로 걸어간 것이 아니라
피고의 손에 쥐어진 채 들려갔기 때문이다.
게다가 닭이 울 것을 방지하기 위해 목과 입을 틀어막은 것은
동물의 숨쉴 권리와 울 권리를 박탈한 끔찍하고
반동물적인 행위라 아니할 수 없으니
마땅히 큰 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
재판장의 그 기막힌 논고에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뜨덕끄덕 할 뿐이었다.
이 이야기는 {생각을 바꾸는 우화}란 책에서 소개된 내용으로
부잣집에서 닭과 소를 절도한 재판장의 아들과
그 아들 친구에 대해 명판결을 내렸는데,
공인으로서 사사로운 인정에 끌리지 않고
엄격하고 공정한 재판 결과를 내놓아
보는 이로 하여금 흐뭇함과
더불어 공인으로서의 취해야 할 자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내용입니다.
보통 상식으로는 닭보다는 소를 절도한 죄가 훨씬 크지만,
그 상식을 뛰어넘어 본인의 아들에게 반동물적인 행위까지 추가하여
더 많은 징계를 내린 것은 법조인을 비롯한 모든 공인들이
공(公)을 위해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할 바이고,
한편으로는 정말 닮아가야 할 심법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동안 우리 법조인들이 역대 대통령들의 친인척 비리와
정치와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의 지도자들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위 재판장 같이 원근친소의 편착에도 끌리는 바가 없이
대쪽같이 대의와 공을 위해 더 엄중하고 더 공정한 판결을 내렸다면
아마 대를 이은 각종 비리는 없었을 것이고, 범죄도 없었을 것이며,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국민들 사이에서 통용되지 않았으며,
힘없고 빽없는 국민들도 열등감 느끼지 않고 더욱 더 희망을 갖고
열심히 살았으리라 봅니다.
법은 우리 모두가 지키자고 만들어진 것입니다.
법을 지도자들부터 공정하게 지켜야 법의 본래 의미가 살아나고
법의 가치가 들어나며, 법의 위가 서지는 것 같습니다.
원불교 정산 송규정사께서는 법어 공도편 56장에서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이라,
인생의 가치가 그 마음이 바르고 바르지 못한데에 달려 있으며,
가정 사회 국가 또한 그 지도자들의 마음 여하로 흥망과 성쇠가 좌우되나니,
교단의 지도자들은 반드시 정심(正心)에 입각하여
모든 일을 공정하게 처리하여야 자신들도 신망을 잃지 않을 것이요
대중이 미로(迷路)에 방황함이 없이 참다운 수행과 공덕을 쌓아서
이 회상이 무궁하게 흥왕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소중한 님들!
위 이야기가 비록 우화이기는 하지만,
재판장을 비롯한 모든 지도자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살아가면서
매사에 개인의 사사로운 감정과 소아에 묶여서
원근친소의 편착과 권력의 외압에 끌려서
온갖 조소와 손가락질을 받기보다는
오직 공정한 취사로서, 주변인연들의 신망과 함께
칭송을 받는 은혜로운 주인공들이 되길 염원해봅니다.
감사합니다.
정천경교무 합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