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선조 때 명재상이었던 오성 이항복은 한음과 더불어
장난꾸러기 소년으로 우리들에게 더 많이 기억되고 있지만,
그 보다도 아랫사람의 허물을 덮어주는
넓은 도량의 소유자로서 더 존경을 받은 인물이다.
어느 날 오성이 조정에서 회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한 여인이 행차 앞을 가로질러 지나가자,
앞에서 대감을 모시고 가던 하인들이
그 여인을 꾸짖어 땅바닥에 넘어뜨렸다.
이에, 잠시 뒤 집으로 돌아온 오성은
하인들을 불러놓고 타일렀다.
"내가 거느린 사람 중에 혹 잘못이 있으면
그것은 바로 내 잘못이다.
길가는 사람을 밀어서 땅에 넘어지게 한 것은
나의 권한을 빙자하여 그 사람의 권한을 무시한 것이니,
너희들은 조심하여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말라."
그런데 그 일이 있고난 뒤 얼마 안 있어
한 여인이 오성의 집 앞 언덕에 올라가서
"네가 정승이 되어 나라에 한 유익한 일이 무엇이기에
머리도 허연 늙은이가 종들을 시켜 행패를 부리냐?"고
큰 소리로 갖은 욕설을 퍼부은 것이 아닌가.
오성은 못 들은체 하고서 하인들 모두 불러모아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였다.
그런데 마침 그 자리에 한 손님이 있다가
이 욕설을 듣고 해괴하게 여겨 물었다.
"도대체 저 여인이 지금 누구를 욕하고 있습니까?"
오성대감이 너털웃음을 지으면서 답하였다.
"우리집에 머리 허연 늙은 것이라면
나 말고 바로 누구 있겠소?"
이에, 손님이 깜짝 놀라 "왜 멀리 내쫓거나 잡아들이지 않고
함부로 지껄이도록 내버려두십니까?"하고 묻자,
오성 대감이 다음과 같이 답하였다.
"내가 먼저 잘못하였으니 설사 내 집 앞이라 해도
그 여인이 성내어 욕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지오."
저는 이 일화를 접하면서
오성대감의 잘못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그 넓은 도량과
수하 사람들의 잘못까지도 자신의 잘못으로 여기고
끝까지 지도하며 단속하면서 책임짓는 자세에서,
그저 존경심과 더불어 본받고 싶은 마음이 났습니다.
그러면서 스승이나 부모, 지도자들을 욕먹게 하는 것이
본인 스스로의 잘못에 의한 것도 있겠지만,
그 수하 사람들 관리와 단속을 잘 못하는데서 비롯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참된 스승이나 지도자는 본인의 심신뿐만 아니라,
수하 사람들의 관리와 단속도 잘 하면서,
그들의 잘못에 대해 인정을 하고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구나 하는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울러, 이 일화는 권세 주변의 어리석은 해바라기들로 하여금
남의 권력을 빙자하여 힘없고 백없는 민초들을 함부로 짓밟거나
인권을 무시하지 말고 죄를 짓지 말라는 깨우침도
함께 전해주고 있습니다.
우리 소중한 님들!
오늘도 혹여나 본인의 잘못이나 수하 사람의 잘못이 있을 때는
그 잘못을 달게 받아들이고
수하 사람들의 잘못까지도 스스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넓은 도량의 소유자 되시고,
특히, 스승과 지도자인 경우는
수하 사람 관리와 단속을 잘 하시어
욕을 덤으로 먹는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래봅니다.
감사합니다.
정천경교무 합장
|